【원고, 상고인】 한국가스공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최희준 외 5인)
【피고, 피상고인】 별지 피고들 목록 기재와 같다.
【원심판결】 서울고법 2024. 9. 11. 선고 2023나2020349 판결
【주 문】
원심판결 중 예비적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나머지 상고를 기각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인정된 사실관계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가. 원고는 한국가스공사법에 따라 설립된 법인으로, 배전반 구매 입찰 공고를 하고, 이를 통해 배전반을 공급받은 자이다. 피고들은 배전반을 제조·설치하는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들로 모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이라 한다) 제2조 제1호의 사업자이다.
나. 원고는 2013. 4. 23.부터 2015. 7. 21.까지 15회에 걸쳐 노후 배전반 교체 등을 위한 배전반 공급 및 설치 사업자를 선정하는 입찰을 진행하였고, 피고들은 입찰에 참여하였다(이하 통칭하여 ‘이 사건 입찰’이라 한다). 이 사건 입찰 공고문에는 ‘입찰자는 반드시 우리 공사 전자입찰특별유의서, 물품구매입찰유의서, 청렴계약 입찰 특별유의서 등 입찰에 필요한 모든 사항에 대하여 입찰 전에 완전히 숙지하고 입찰에 응하여야 하며, 이를 숙지 못한 책임은 입찰자에게 있음’이라는 업체 제시문이 기재되어 있고, ‘청렴계약 입찰 특별유의서’가 파일 형태로 첨부되어 있었다(이하 ‘이 사건 청렴계약 입찰 특별유의서’라 한다).
다. 이 사건 청렴계약 입찰 특별유의서 제4조의2는 경쟁입찰에서 입찰참가자가 담합행위로 인하여 원고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결과 담합행위에 참여한 모든 입찰참가자는 ‘담합에 따라 결정된 낙찰가격과 담합이 없었을 경우 형성되었으리라고 인정되는 가격의 차액’(제1호) 등을 연대하여 원고에게 배상하여야 하고(제1항), 원고에게 손해를 입혔으나 구체적인 손해액을 산정하기 곤란하거나 불가능하다고 원고가 판단하는 경우는 계약금액의 10%를 원고에게 연대하여 배상하여야 한다(제2항)고 정하고 있다(이하 ‘이 사건 손해배상액예정 조항’이라 한다).
라. 공정거래위원회는 2020. 4. 27. 피고들이 이 사건 입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담합행위(이하 ‘이 사건 담합행위’라 한다)를 하였다는 이유로 피고들에 대하여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였다. 피고들 중 일부는 법원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해당 피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는 내용의 판결이 확정되었다.
2. 주위적 청구에 관한 판단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손해배상액예정 조항은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법’이라 한다)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약관’에 해당하고, 이는 설명의무 대상에 해당한다고 본 다음, 원고가 피고들에게 이 사건 손해배상액예정 조항의 내용을 설명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의 이 사건 손해배상액예정 조항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배척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판단은 수긍할 수 있다.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약관법이 정한 약관의 의미와 설명의무 대상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
3. 예비적 청구에 관한 판단
가. 원심 판단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1) 원고는 늦어도 공정거래위원회가 피고들에게 이 사건 담합행위를 이유로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부과한 2020. 4. 27.경에는 이 사건 담합행위의 위법성 및 그로 인한 손해 발생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
2) 원고는 2020. 11. 26. 이 사건 소 제기 당시에는 이 사건 손해배상액예정 조항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만을 청구원인으로 하였을 뿐이고, 2020. 4. 27.로부터 3년이 경과한 이후인 2023. 11. 24.에서야 준비서면 제출을 통해 비로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예비적 청구원인으로 추가하였다.
3)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완성으로 소멸하였고, 이 사건 소 제기 당시 소멸시효가 중단되었다는 원고의 재항변은 이유 없다.
나. 대법원 판단
1) 구 공정거래법(2018. 9. 18. 법률 제1578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56조 제1항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법적 성격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므로 이에 관하여는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된다(대법원 2014. 9. 4. 선고 2013다215843 판결 등 참조). 시효제도의 존재 이유는 영속된 사실 상태를 존중하고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고 특히 소멸시효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강하므로, 권리자가 재판상 그 권리를 주장하여 권리 위에 잠자는 것이 아님을 표명한 때에는 시효중단 사유가 된다. 이러한 시효중단 사유로서의 재판상 청구에는 소멸시효 대상인 그 권리 자체의 이행청구나 확인청구를 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그 권리가 발생한 기본적 법률관계를 기초로 하여 소의 형식으로 주장하는 경우 또는 그 권리를 기초로 하거나 그것을 포함하여 형성된 후속 법률관계에 관한 청구를 하는 경우에도 그로써 권리 실행의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때에는 이에 포함된다(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7다250998 판결 등 참조).
2) 기록에 의하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원고는 이 사건 소장에서 피고들이 구 공정거래법 제56조에 따른 손해배상의무를 진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하였고, 이후 제출한 2022. 7. 19. 자 준비서면, 2022. 8. 31. 자 준비서면, 2022. 9. 27. 자 준비서면에서도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있음을 전제로 이 사건 손해배상액예정 조항이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액예정 조항임을 거듭 주장하였다.
나) 제1심도 2022. 10. 4.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원인이 불법행위(입찰담합)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이나, 그 손해액 산정과 관련하여서는 이 사건 손해배상액예정 조항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보인다.’고 하면서 피고별 청구금액 총액을 정리하라는 내용의 석명준비명령을 하기도 하였다.
다) 원고는 2023. 11. 24. 자 준비서면에서 예비적 청구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추가한다고 진술하면서, 이 사건 손해배상액예정 조항에 따른 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원고에게 이 사건 담합행위로 인하여 높게 형성된 낙찰가격과 담합행위가 없었을 경우에 형성되었을 가격의 차액만큼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3) 이러한 사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본다. 원고는 이 사건 소장에서부터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한다고 주장하였고, 다만 그 손해액의 산정방법에 관하여서만 이 사건 손해배상액예정 조항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가, 2023. 11. 24. 자 준비서면에 이르러 이른바 차액설에 따라 손해액을 산정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예비적으로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원고는 복수의 청구를 주위적·예비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그 손해액 산정의 근거를 달리하여 판단 순서를 정해 주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봄이 타당하다(원심판단과 같이 이 사건 손해배상액예정 조항을 불법행위가 아니라,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조항으로 보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원고가 이 사건 소로써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한 것을 이와 달리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한 것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결국 불법행위인 이 사건 담합행위로 인한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원고가 재판상 그 권리를 주장하여 권리 위에 잠자는 것이 아님을 표명한 때인 이 사건 소 제기 당시부터 소멸시효가 중단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4) 그럼에도 원심은 단기소멸시효 기간이 지난 이후에 비로소 원고의 2023. 11. 24. 자 준비서면이 제출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의 소멸시효 중단 재항변을 배척하였다. 이 부분 원심판단에는 시효중단사유인 재판상 청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4. 결론
원심판결 중 예비적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나머지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 지] 피고들 목록: 생략
대법관 이숙연(재판장) 오석준 노경필(주심)